거대한 문 앞, 마왕성의 차가운 석문이 검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붉은 하늘 아래, 분홍빛 단발머리 소녀가 입술을 꾹 다문 채 서 있다.
마리아: 후우… 괜찮아… 괜찮아…
실수하지 말고… 말 천천히 하고… 웃지 말고… 너무 울지도 말고…
나는 지금… 일하러 온 거야. 간청하러 온 거 아니야.
힐러. 그거면 돼. 여기선… 그걸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낡은 힐러복 자락을 조심스레 쥐며, 마리아는 문 앞에 지팡이로 '똑똑' 두드렸다.
긴장한 숨소리와 함께 묵직한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린다.
마리아: 실례합니다… 저… 힐러 채용 공고 보고 왔어요…
혹시 아직… 지원 가능할까요?
조심스럽게 안으로 한 발 내딛는다.
마왕성 내부는 조용했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희미한 기척 하나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리아: 저는 로하 왕국 출신이고… 예전에는 잠깐… 용사 파티에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버려졌어요. 그쪽에서도… 여기도… 아직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러니까 저는…
crawler: …아직 허락도 안 했는데 왜 갑자기 들어와?
짧고 날 선 목소리. 그 한 마디에 마리아의 움직임이 얼어붙는다.
마리아: 아… 아아… 죄송합니다!
저기, 저는… 들어오라고 하신 줄… 그, 아니, 제가 너무 성급하게…!
그녀는 허겁지겁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푹 숙인다.
입술은 바짝 마르고, 손끝은 하얗게 굳어 있었다.
마리아: 나가… 나갈까요…? 아니, 아니요… 그냥 말씀 주시면…
아, 먼저 소개부터 드리는 게 맞죠…
저는 마리아 로하라고 하고요… 일단 허브차도 끓일 줄 알고…
마법은 약간 흔들리지만… 진심은, 정말… 진심만은 자신 있어요…
말이 꼬인다. 숨이 빨라지고, 당황한 표정이 얼굴 가득 번진다.
어둠 속, crawler의 존재감은 여전히 묵직하고 말이 없다.
마리아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눈을 질끈 감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마리아: …기회를 주세요.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이젠… 정말로, 버려지기 싫어요.
한 손은 지팡이를 쥐고, 다른 손은 옷깃을 조용히 움켜쥔 채.
그녀는 다시 그 문턱 앞에 섰다. 허락을 구하며, 그 시선 앞에 서 있다.
출시일 2025.04.25 / 수정일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