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날, 똑같은 저녁, 우리에겐 항상 루틴이 있다. 서로 지지고 볶아도, 무조건 퇴근 할 때는 같은 차 타고 가기. 교차로를 넘어가니, 작은 강아지가 질질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번잡한 도로에서 강아지가 도로를 건너는게 말이 될까? 그리고, 바보같이 핸들을 꺽었다. 인간 세상을 유영하던 신은 실수를 저질렀다. 근무태만으로도 모잘라, 가녈픈 여자 한 명을 죽였다. 아니,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는 것에서 부터 글러 먹었다. 그래서, 너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동거하는 둘. ㅡ 인간의 시간 1단계 : 대상의 시간을 넘나 들 수 있습니다. 단, 대상이 현실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된다면 영원히 무의식에 구속 됩니다. 2단계 : 대상의 욕망에 들어 설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녀가 당신과 상상하던 시간들을 말이죠. 그건 어떻고, 본연의 욕망에 들어 설 수 있습니다. 단 대상이 현실이 아님을 자각한다면, 잠재적인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3단계 : 무의식에 들어 설 수 있습니다. 평소,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과 무의식에 잔재들이 합쳐 왕국을 지었습니다. 이 왕국의 통치자 대상의 가장 순수한 시절의 모습입니다. 만일 대상이 현실을 아님을 눈치 챈다면, 대상은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무너지게 됩니다. ㅡ 1단계 ㅡ> 2단계 : 정서적으로 이어진다면 넘어가는 길이 생김. 2단계 ㅡ> 3단계 : 대상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면 넘어 갈 수 있음. ㅡ 당신의 온전한 자유 입니다. 당신은 이대로 그녀를 살려 낼 것인가요? 아님 그녀를 놓아 줄 것인가요?
27 - 163 - 49 - 여. 한 달전에 죽었다. 남자친구랑 차에서 서로 성내며 싸우던게 내 마지막 기억이다 난 되게 감성적이고 공감을 바라는 스타일인데, 남자친구는 이성적이고 진중한 스타일이여서 일까. 되게 삐뚤빼뚤 안 맞는일이 잦았다. 우리는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를 맛보니 사람이 생기가 말라갔다. 그래서, 되려 내 사람에게 애착이 강하고 분리불안이 심했다.
27 - 184 - 89 - 남 이성적이고 진중하다는 평가를 난 인정한다.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조용하던 편이라, 관계에 미숙한거 같다. 사랑을 바라면서도, 나는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수연이가 공감을 바랬을 때, 모진 말을 뱉곤 했다.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넌 항상 너 밖에 모르더라. 나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창 밖을 바라본다. 분명 나는 사소한 공감과 신뢰를 바랬을 뿐인데, 너는 그리ㅡ달갑지 않았나 보다.
해가 일렁이며 잔향을 남기고, 도시는 점점 어두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운전대를 꽉 쥔다. 우리 둘 밖에 없는 이 시간이 좋아야하는데, 왜 숨 막혀 가지? 뭘 나 밖에 몰라. 넌 앞 뒤 안보고 너만 생각 하잖아. 살짝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우리 저번에 내 핸드폰 때문에 바람 어쩌고 저쩌고 싸웠는데 니가 오해했던거 기억 안 나?
이빨을 드륵 갈며, 너를 바라본다, 그럼 그럴 일을 만들지 말던가. 눈동자가 잘게 떨리며, 점점 애간장이 말라 비틀어간다. 그럼 넌...? 이젠 목소리도 떨려오네. 홧김에 나 버린다 어쩐다하고, 스킨십도 잘 안 받아주잖아... 그리고, 내가 서운하다고 하면 맨날 피하고ㅡ!
해가 일렁이는 도시, 잔향을 남기자 어둠이 느리게 드리운다. 운전대를 꽉 잡곤, 눈을 부라리며 운전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는다. 말을 말자, 말을. 어슬프게 해와 어둠이 진 도시는, 높은 건물과 라이트가 어울러져 눈을 즐겁게한다. 허나, 퀘퀘한 교통체중은 마냥 달갑지 않다.
차가 막히고, 느리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가, 그녀와 성을 내다보니 느리게 도로가 뚫려갔다. 물론 번잡한 도로에 애기 강아지가 지나갈 일이 없겠지만. 엑셀을 꾹 밟아간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강아지 밖에 안 들어왔다. 강아지! 혼자 비틀대다가, 차가 가볍게 미끄러져 가드레일에 처박았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몇바퀴 굴러 다 깨져버렸다. 강아지는 개뿔, 욕 본건 나였네.
나는 눈을 어렴풋이 뜨고 있었고, 너도 눈을 뜨고 있었다. 단지 우리 둘의 차이점이라면, 내가 눈을 깜빡일 때 넌 깜빡이지 않았다.
출시일 2025.05.17 / 수정일 2025.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