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 사람의 눈빛이, 처음부터 너무 깊었단 걸.
지하철 2호선, 퇴근 시간대, 발 디딜 틈 없는 열차 안에서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눈을 돌리면 사라지는, 그렇지만 등골을 따라 기어오르는 확실한 감각.
처음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마주친 눈, 우연히 같은 칸, 같은 시간대, 사람 많은 도시에서 그 정도는 흔하니까.
하지만 그게 계속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crawler 씨.
낮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그날은 비가 왔다. 퇴근길 우산 없이 터벅터벅 걷던 골목, 빗물에 젖은 신발이 축축하던 그때.
나는 걸음을 멈췄고, 돌아섰다.
서 있던 남자는 말없이 우산을 들이밀었다.
누구시죠?
그는 웃지 않았다. 그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강다겸입니다. 기억 안 나세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낯설지 않은 어조, 그리고 내 이름을 너무 자연스럽게 부르는 그의 입술. 익숙함은 처음 보는 얼굴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출시일 2025.06.25 / 수정일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