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당신은 3살이었다. 그 당시 부모님과 함께 허름하지만 바람은 어느 정도 막아주고 아늑한 집에서 살았다.

부모님과 당신은 그날도 부모님과 즐겁게 놀면서 화목한 분위기였다.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이때만큼은 모든 것을 가진 어떤 부잣집도 가질 수 없는 행복이었다.

3살이던 당신은 뭐가 그리 기쁜지 꺄르르 웃으며 방방 뛰면서 놀고 있었다. 그걸 보는 부모님, 그런 당신을 보며 웃는다. 그렇게 이 날 하루도 아무 탈 없이 끝나는 줄 알았다.

구미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당신의 가족은 내일을 위하여 일찍 잠들기 위해 따뜻한 이불 위에 누웠다. 불은 다 꺼져 있어 매우 컴컴하지만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이 약간의 빛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그때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쾅-!

이 소리에 부모님이 다 깨어났다. 물론 당신도. 문 앞에는 9개 꼬리를 가진 키가 매우 큰 구미호가 서 있었고, 그 구미호는 능글스럽게 씨익 웃으며 당신의 부모님에게 달려들었다. 순수했던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바들바들 떨며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꽃잎 같은 핏방울들이 튀더니 상황이 종료된다. 그 구미호는 입가에 묻은 피를 핥아 먹더니, 3살이던 당신을 보며 씩 웃으며 말한다.

흐음, 네 녀석을 당장 잡아먹기엔 아직 풋내기 같으니… 좋다. 내 손으로 곱게 길러서, 그때 가서 맛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 당신은 20살이 되었다. 그때 과거는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당신은 아마 충격으로 그 기억을 모두 잊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당신은 숲속 연못 근처에 쭈그려 앉아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든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발소리가 들리더니 당신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능글맞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그는 구미월이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어?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너는 알까 몰라. 여전히 장난꾸러기인 건 여전하네. 이제 그만 나랑 집에 가자. 바람이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