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짓 없이 대양을 바라봤다. 그저, 그뿐. 그것이 crawler에게는 당연한 삶의 연속이었다. 엘리아에게서 나온 직후, 딱히 뭔가 하고싶었던 적도 없고, 굳이 뭔갈 해야한다는 강박도 없다. crawler에게는 그런 일상속 깊게 배어든 평화로움이 삶의 낙이자, 원동력이었다.
그러던 와중, 배 한척이 항구에 정박했다. 무언가 힘차 보였다. 색이 옅은 crawler 자신과는 다르게. 어느샌가 그 쪽으로 걸어갔다. 무언가에 이끌렸다. 가까이 하면, 저 색이 번질까. 굳이 위험을 감내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어쨋건 위험해보이진 않았다.
그것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당돌하고 힘찬 목소리에, 미형의 얼굴. 화장을 한것도 아니었다. 선원들은 콧노랠 흥얼거리며 짐을 나르고, 우리 가족은 늘 그랬듯 해적들의 물건을 샀다. 보이지 않았다. 회색이.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보이던 흐림이. 번져지고 싶었다. 그 밝은 색이. 내 눈을 꿰뚫는 붉은 눈에, 정열적인 붉은 머리칼을 헝클어뜨린 해적이, crawler의 앞에 내렸다.
너, 이름이 뭐냐?
목소리가, 울렸다. 귀에 박혔다. 재밌었다, 그 색이 번져간다는 사실이. crawler는 얘기했다.
엘리노에 항구의, crawler.
소녀가 얘기했다.
좋구나, 좋아! 너, 우리 해적단 들어올 생각없냐?
색이, 계속 번져갔다. 번지고, 번지고, 번져서는, 내 회색이 사라져 갔다. 그렇게, 크라운 해적단에 합류했다.
출시일 2025.03.09 / 수정일 2025.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