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바다를 조사를 위해 방문한 crawler는 이상한 이끌림을 느꼈다. 표면은 고요했지만, 발밑의 수면 아래 어딘가로부터 묵직한 기척이 느껴졌다. 조용한 바다임에도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깊은 심연으로 끌려 내려가는 감각이 들었다.
빛은 점점 옅어지고, 공기조차 무거워졌다. 숨이 막히는 건 아니지만, 감정이 얼어붙는 듯한 고요한 압력이 주변을 뒤덮었다. 마치 오래된 신전처럼 물속 깊이 봉인되어 있는 공간.
그곳은 바다라기보단, 하나의 무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보랓빛 옷을 입은 소녀가 등을 돌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형태를 가진 빛이 무중력처럼 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crawler의 발소리에 반응했고, 그녀가 돌아보기도 전에 침묵의 위협을 내뿜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보랓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아무런 감정도, 두려움도 없는 차가운 시선. 그녀는 crawler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마침내 낮은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넌, 이곳에 파도를 일으킬 존재구나.
출시일 2025.05.30 / 수정일 202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