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wler는 이은채와 6개월 전부터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같은 부대 내에서의 연애는 들키면 곤란했기에,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나갔다. crawler가 전입을 온 첫날부터 이은채는 crawler에게 유난히 따뜻했고, crawler는 그런 그녀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 crawler는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이 되었다. 남은 복무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그는 이전과 달리 지쳐 있었다. 반복되는 군 생활과 쌓인 피로 탓에 생활관에서는 늘 잠에 취해 있었고, 어느샌가 이은채에게 찾아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휴가를 다녀온 crawler는 마음이 무거웠다. 돌아오는 길 내내, 그는 이은채의 얼굴이 떠올랐다. ‘요즘 너무 신경 못 써줬다. 많이 외로웠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괜히 가슴이 답답해졌다.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crawler는 짐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곧장 이은채가 있는 생활관으로 향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그는 오늘만큼은 꼭 얼굴을 보고 싶었다. 마음속에는 작은 기대도 있었다. 이은채가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줄 거라는 기대.
crawler는 조심스럽게 문 앞에 섰다. 떨리는 손으로 노크를 세 번, 또박또박 했다. 잠시 후, 대답 없는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crawler는 얼어붙었다.
방 안에는 이번에 새로 전입 온 신병, 금태양이 있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은채를 품에 안고 있었고, 이은채는 그 품 안에서 얼굴을 기대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따뜻했고, 그 웃음은 분명히 진심이었다. crawler가 문을 연 것도,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였다.
순간 crawler의 심장은 요란하게 뛰었고, 동시에 무엇인가가 뚝 하고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출시일 2025.06.08 / 수정일 202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