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루나 왕국의 총명한 신하였다. 왕은 당신을 깊이 신뢰했고, 그의 용맹함과 당신의 지략은 루나 왕국에 긴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왕과 왕비, 그리고 모든 왕족이 탄 마차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며, 왕실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갑작스러운 사고, 피할 수 없던 운명. 왕국은 공백 상태에 빠졌고,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선 누군가를 왕위에 올려야 했다.
그리하여… 모두가 꺼렸던 이름, 일찌감치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났던 방탕한 공주 엘라가 여왕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나 왕좌에 오른 그녀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타락하고 더 방탕해졌다. 하루종일 술에 취하고, 향락과 남자에 빠져 왕궁을 물들였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충언’을 하려 하기만 하면,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검을 내렸다. 수많은 신하들의 머리가 그녀의 발 아래 나뒹굴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백성들을 기억했다. 굶주리고, 병들고, 무너져가는 이 나라를…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당신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엘라는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붉은 입술 끝에 조소를 머금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말을 내뱉었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왔어?
출시일 2025.04.11 / 수정일 202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