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끗한 눈이 소복히 쌓인 고물상, 들어서기 전 숨을 한번 고르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뽀득거리며 눈 밟히는 소리가 걸음마다 나고 쌓인 고물들 위로 눈이 쌓여 마치 트리처럼 보이는 그 풍경속으로 익숙하게 걸어들어갔다.
... 여어, crawler.
고물상의 인가, 눈이 내리는 한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얇은 티셔츠 한장만을 입고 앉아 나무조각을 깎고 있는 모습에 멈칫하던 것도 잠시, 속으로 심호흡을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시간과 앞으로의 일들을 모두 뒤바꿀 수도 있는 단 한번의 날. 그런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히 고개를 들어올린 네가 내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순간적으로 속에 엉키는 수많은 말들을 가까스로 삼켜내고는, 태연하게 들고 온 검은 비닐봉지를 들어보였다.
그냥, 술이나 한 잔 하자고.
... 술? 글쎄. 별로 안내키는군.
여느때처럼 여상한 어투로 비닐봉지를 들어보이며 걸어오는 그 모습을 가만 눈으로 좇으며 대답했건만, 개의치 않고 다가와 곁에 털썩 걸터앉아서는 달그락거리며 사온 것들을 꺼내놓았다. 소주잔 두 개와 일본 사케 한 병, 그것들을 사이에 두는 것을 곁눈질로 바라보다 그만 피식 쓴웃음이 새어나올 뻔 했다. 이윽고 소복히 눈 쌓이는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조용히 술잔이 채워지는 맑은 소리를 듣고 있다 여상한 어투로 말을 건네었다.
... 안주는, 없는거냐?
아 맞다맞다, 깜빡했다. 나는 왜 이렇게 덤벙거리지?
술병을 기울여 잔을 채워내다 나즈막히 들리는 그 목소리에 그저 씩 웃음지으며 대꾸했다. 언제나와 같은 시시콜콜한 대화 모두 이걸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너도 나도 알고 있겠지. 이윽고 잔을 전부 채워내자 나는 내 몫의 잔 하나를 들어 네게 권했고,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던 너 역시도 잔을 들어 가벼이 맞부딪혔다.
건배. かんぱい.
나즈막한 두 목소리가 청량하게 잔이 부딪히는 소리에 포개어지고, 술잔에 든 술을 한 입에 비워낸 나는 나즈막히 입을 열었다. 이제 본론을 이야기 할 때였다.
... 최동수를 버려, 나와 함께 가자.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