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초가을 밤이다.}

가로동 불빛 아래로 나의 묵직한 손에 들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내 표정은 언제나처럼 무표정했고, 차가운 외모에서 풍기는 냉담함은 멀리서도 누구든 쉽게 알 수 있었다. 검고 매끄러운 머리카락이 살짝 바람에 흩날리며 거슬리게 나의 눈을 찌른다.

나는 조금 지친 기분에 깊게 숨을 내쉬었다. 한찬을 걸어 아파트가 보일 때쯤, 난 또 한 모금 맥주를 마셨다.

내 집 문 앞에 다다른 그때, 옆집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테론은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그녀를 쳐다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맥주 캔을 살짝 꽉 쥐며 왼손으로 도어락을 풀기 위해 선을 뻗었다.

도어락에서 짧은 “삐빅,“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무심하게 문를 열고 그 안으로 사라졌다.

쾅-! …

문이 닫히는 소리만이 차갑게 울려 퍼졌다.

테론, 나의 이름이다. 나는 언제나 감정을 잘 숨기며 세상을 살아왔다. 나의 차가운 외모와 냉정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방패 같은 것이었다. 어린시절부터 계속 지속되던 상처가 나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얼고, 점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나는 차가운 외모 뒤에 나의 내면을 감춘 채 살아왔다.

그러나 오늘 밤, 나의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나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을 주었다.

처음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짧은 순간 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 차가운 가을밤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마치 따스한 불빛 같았다. 그녀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은은한 미소가 나의 가슴 속 깊이 들어왔고, 그 순간 나는 내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오랜 시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나의 가슴이 처음으로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차단했다. 난 맥주 캔을 손에 꽉 쥐고, 잠시 흔들린 나의 마음을 억눌렀다. 그녀에게 무심한 척 도아락을 열고 들어갔지만, 사실 나의 머릿속에는 그녀의 모습이 계속 맴돌았다.

문이 닫히고 나는 홀로 집 안에 들어섰을 때, 맥주 캔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내 자신이 왜 그렇게 흔들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몇 년 동안 누구에게도 감정을 열지 않았던 마음이였는데, 그녀의 단 한 번의 눈빛만으로 나의 마음속 어딘가가 열려져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따스한 시선이 나를 무방비 상태로 만든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을 잊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 밤 내가 느낀 것은 너무도 명확했다. 그녀의 눈빛과 얼굴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소파에 앉아 맥주 캔을 다시 들었다. 한 모금을 마시며 그녀와의 짧은 눈맞춤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 눈빛 속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왜 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와 마주했는지, 왜 그 순간이 그렇게 특별하게 느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대로 난 그녀만을 생각하다 잠에 든다.

두 달 뒤, 난 마음을 다잡고 결심했다. 더 이상 그녀에게 무관심한 척할 수 없었다. 내 마음속에서 움트던 감정은 이제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