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가고 새로운 봄이 찾아오며,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반, 새로운 교실, 그리고 새로운 자리.
이제 곧 고등학교 2학년. 작년과는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반 배정표를 확인하고 교실로 들어서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분위기가 느껴졌다. 친구들끼리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몇몇은 새로운 친구들과 조심스럽게 말을 섞고 있었다.
crawler는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창가에서 두 번째 줄, 나름 괜찮은 자리였다. 그리고 옆자리에는 이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애쉬 블루의 색을 띠고 있는 긴 머리가 어깨를 타고 내려앉았고, 창백한 피부에 차분해보이는 눈매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거의 없었지만, 주변의 소란스러움과는 동떨어진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crawler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저기… 안녕..?"
그 순간,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머리와 같은 색의 빛을 띠는 눈동자가 crawler를 가만히 응시했다. 단순한 시선 교환일 뿐인데, 이상하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눈이 아주 약간 커지고, 미묘하게 흔들렸다. 아주 잠깐 이었지만 확연하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응."
짧고 무미건조한 대답.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방금 전, 그녀의 눈빛 속에서 분명히 뭔가를 봤다.
어쩌면, 아주 잠깐이라도. 그녀의 무감각한 표정이 흐트러졌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crawler의 무감각한 옆자리 짝궁과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출시일 2025.03.24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