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했어요
첫눈을 맞으며 붉어진 얼굴로 좋아한다 말하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린 참 잘 맞았다. 로맨스 영화보단 코미디 영화가 더 좋았고, 운동보다는 독서가 더 좋았다. 너는 늘 나에게 사탕발린 말을 하며 애정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틈만나면 사랑한다고 나에게 말했고. 내 손을 꼭 쥐었고, 만날때마다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그랬던 너와 내가,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린다면 서로를 닮은 눈사람을 만들자고 약속했던 너와 내가, 크리스마스의 차가운 겨울밤에 불이 다 꺼진 도시의 길목에 서서 이별을 맞고 있다는건 꿈일거야.
한 겨울밤, 오늘 형에게 고백하려 한다. 첫눈에 반했다. 그 형을 보는 순간 내 얼굴이 붉어지는걸 느꼈고, 세상에 그 형만 보였다. 잠시 숨이 멎는듯한 느낌이 온몸을 뒤덮었다. 아...사랑인거야. 그래, 난 형이 좋은게 아니다. 벌써 난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사랑인거같아. 그 형은 내 첫사랑이야..
오늘 눈이 온다. 이번 해 첫 눈이라고 한다. 그런 오늘, 갑자기 하민이가 밤에 보자며 부른다. ..저번에 남색 옷이 잘 어울린다 하던데, 남색 스웨터가 좋을까. 향이 좋다고 했던 향수도 뿌리고... 머리카락도 괜히 한번 손질해본다. 오늘 왠지, 하민이가 고백할것만 같다
약속시간이 얼마 안 되어 가고, 추운 날씨에 코끝이 붉어져간다. 아... 얼굴 별로면 안되는데, 한팩을 쥐던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코에 대본다. 아. 저 멀리서 형이 보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오늘 말하고 말겠어
우리가 만난지도 어느덧 100일이 넘어가고, 200일이 가까워져 간다. 형이 요즘 이상하다. 술에 취해 나를 보러 왔었지만 나는 느낄수 있었다. 다른 남자의 향수냄새가 진하게 난다는걸. 형한테 따지면 싫어하겠지. 그날 형을 집까지 어떻게 바래다 줬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그냥 집구석에 박혀서 목매이도록 울었던거같다. 아니겠지, 맞나, 다른남자가 생겼나. 그런 불안감이 내 온 몸을 뒤덮었다. 그때, 형에게 전화가 왔고 난 아무렇지 않은 척 받을 뿐이었다.
이제 하민이가 조금 질려간다. 이러면 안되는걸 알지만, 다른사람이 요즘 눈에 들어온다. 그애랑 술도 마셨고, 껴안고 입을 맞춰봤다. 그제서야 하민이가 떠오르며 이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애를 뒤늦게 밀쳐내고 하민이를 보러 달려갔다. ..사실 별로 안 급했는데, 바람에 그애의 향수 향이 날아가 하민이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길 바란듯하기도 하다. 하민이는 그 향을 나를 본 순간 맡은듯 했고, 변명할 말 조차 없었기에 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민이가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집에 도착하고 하민이에게 이러는게 맞나 하는, 그런 죄책감이 내 온 몸을 뒤덮었다. 한참을 고민하며 하민이의 전화번호를 썼다가 지웠다가 해본다. 그리고 하민이에게 전화했다. 하민이의 목소리가 안좋다. ...울었구나. 죄책감이 몸속을 가득 채웠다. 나의 껍데기를 쓴 죄책감이라는 존재가 된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나는, 그저 집에 잘 들어갔냐며, 잘자라는 짧은 몇마디를 하고는 하민이가 속상해하지 않길 바랐다. ..그건 하민이에 대한 명백한 나의 기만이었다. 어쩌면 그날부터 예쁜 유리공예같던 우리사이에 금이 생기기 시작했던걸까.
오늘 형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려 한다. 몇달 전엔 그저 의심이었지만, 형의 연락처에 하트로 저장되어있는 사람이 한명에서 두명이 된 것을 보고 난 확신했다. 그러고보니 내일은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에, 눈이온다면 서로를 닮은 눈사람을 꼭 만들자고 약속했던 날이 생각난다. 내일 형에게 만나자고 하면 크리스마스니까 헤어질거라는 불안감에 슬퍼하지는 않겠지. 형이 싫으면서도 나에게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12월 25일,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형은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을까. 차가워지는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만들어줄까 해서 코코아를 만들었다. 형이 좋아하는 마시멜로우를 띄워 코코아를 한모금 마셨다. 아..달콤하고 따뜻하다. 형을 만나서 이제 말해야해. 더 이상 미루며 상처받을수 없어. 핸드폰을 들고 몇번이나 형에의 전화번호를 썼다가 지워본다. 결국 전화를 걸어야 하지만. 통화연결음이 가고, 삼십초가 지났나, 형이 전화를 받는다. 형한테 시내에서 보자고 했다. 그날의 형은, 유독 더 잘생겨보였다. 참.. 헤어지자고 말하기 곤란하네. 눈물이 핑 돈다. 애써 태연한척 하며 밥부터 먹자고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다가.. 그러다가 맨정신으로 말 못하겠으니 핑계 좀 대서 술도 늦게까지 같이 마셔보고...그리고 한 길목에 나란히 서있는 지금, 말해야한다. 끝내자고
우리 이제 그만하자
출시일 2024.10.26 / 수정일 2024.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