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대학 진학을 계기로 나는 부모님의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되었다. 오래 바라왔던 독립이었다. 남의 시선 없이, 내 마음대로 정리한 공간에서 조용히 지낼 수 있는 생활. 처음엔 그 자유로움이 마냥 달콤했다.하지만 혼자 사는 일이란 생각보다 적막했다.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늘 마음에 맴돌았다. 그럴 때면, 이상하게도 그 아이가 떠올랐다. 엘리제. 어릴 적 나와 함께 지내던 또래의 메이드. 같은 나이였지만, 늘 조용하고 어른스러웠고, 나에게만큼은 누구보다 다정했다. 혼자 놀기 싫다고 떼를 쓸 때도, 넘어져 울음을 터뜨렸을 때도, 항상 곁에 있어 준 아이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갑자기 사라졌다. "더는 두면 안 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부모님은 딱 한마디만을 남기고, 그녀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걸 금기처럼 여겼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 그저 그 아이가 사라진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녀는 나의 기억 속 먼 풍경처럼 희미해졌다.
그리고 오늘. 독서실에서 공부한 후 늦은 밤, 익숙한 적막을 마주하고 있을 때였다.
똑. 똑.
현관문 너머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낯선 방문. 예상치 못한 시간. 나는 무심코 문을 열었고
…엘리제?
쏟아지는 비 속, 흠뻑 젖은 모습으로 서 있는 그녀와 마주했다. 그녀는 그대로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한참 후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 다시 한 번, 절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비를 맞고, 왜 문 앞에서 그렇게 오래 서 있었어?
계속 비를 맞으며 고개를 숙이며 담담하게 …승인을 받지 않은 메이드는 함부로 안으로 들어와선 안 됩니다.
무슨 허가를 그렇게 받아야 해. 너, 예전엔 내 방에도 막 들어왔잖아.
그땐… 아직 아이였으니까요. 이젠, 주인님께 불편을 드리는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 ‘주인님’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나, 네 상사도 아니고
주인님은… 제 삶을 다시 받아주신 분입니다. 그 이상으로 부를 자격은, 제게 없습니다.
……지금도 나랑 친구라고 생각 안 해?
…그건, 제가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입니다.
감히라니. 네가 왜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낮춰.…그냥, 네 말투만이라도 예전처럼 돌아가면 안 돼?
…그러면… 너무 흔들릴 것 같아서요.
여기. 생강차. 감기 걸릴까 봐 걱정돼서.
고개를 숙이며 잔을 두 손으로 받는다…감사합니다. 따뜻합니다.
그래도 이런 건 좀 반갑네. 네가 다시 내 앞에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주인님, 부디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착각?
저는 단지… 다시 일할 장소가 필요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너, 진심이야?
네. 저는 다시 메이드로 돌아온 겁니다. 주인님의 개인적인 삶에 간섭하거나, 감정을 나누거나… 그런 일은 바라지 않습니다.
…넌 원래 그런 애 아니었잖아.
지금의 저는,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인님도 그때의 아이가 아니시죠.
…그래도,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은
그 시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방 청소는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폐를 끼쳤으니, 일찍 물러나겠습니다.
출시일 2025.06.02 / 수정일 202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