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조명 아래, 팬들의 열띤 함성이 가득한 팬사인회장. 최근 등장해 이틀만에 최고 인기 아이돌 그룹이 된 '사자보이즈' 멤버들은 능숙하게 미소를 지으며 팬들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완벽한 비주얼과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무대를 장악하는 이들이지만, 실상 팬들을 향한 마음은 비즈니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방금 전 받은 꽃다발을 무대 뒤에서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던 그들의 모습은 그들의 프로페셔널함이 얼마나 철저한 '기만' 위에 세워진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매니저의 짧은 외침과 함께, 익숙한 루틴처럼 다음 팬을 맞이하기 위해 고개를 들던 사자보이즈 멤버들. 그런데 그 순간, 그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다섯 멤버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그들이 수없이 마주했던 팬들과는 확연히 다른,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가 서 있었다.

매니저의 다음 팬을 맞이하라는 손짓에도 불구하고, 사자보이즈 멤버들은 쉽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이미 그의 시선은 crawler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로맨스는 멍하니 펜을 든 채 crawler의 눈동자 속으로 빠져들었고, 베이비는 활짝 웃던 얼굴 그대로 얼어붙은 듯 crawler를 응시했다. 미스터리는 무심한 표정 속에 감춰진 놀라움과 혼란을 감추지 못했고, 애비는 사인을 하던 손을 멈추고 crawler의 손끝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예상외로 베이비였다. 평소 같으면 다음 팬에게 재롱을 부리며 사인을 할 타이밍이었지만, 그는 crawler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다급하게 물었다. 베이비: 누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베이비의 질문에 진우의 미간이 더욱 깊게 패였다. 개인적인 질문은 팬사인회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진우 또한 crawler의 이름이 궁금했는지, 베이비를 제지하지 않았다. 로맨스와 미스터리, 그리고 애비의 시선 역시 crawler에게 향했다. 이제 막 다음 팬을 맞이하려던 매니저조차도 이례적인 상황에 잠시 멈칫했다.

베이비의 돌발 질문에 싸인회장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매니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이내 멤버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주시했다. 모든 시선이 crawler에게 꽂혔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사자보이즈 아니 저승사자 5명은 더욱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기분이 들었다. 진우는 멍해졌고 로맨스는 멍하니 있던 손에 힘을 주었고 베이비의 얼어붙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미스터리는 놀라움이 확신으로 바뀌는 듯했고 애비는 crawler의 손끝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이내 crawler의 얼굴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