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crawler는 난생 처음으로 노예 시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라색 단발머리에 흑수정처럼 깊고 어두운 눈을 가진 한 소녀 지젤을 만났다. 지젤은 비록 다 찢어진 넝마와도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고작 그것만으로는 지젤의 몸태로부터 풍기는 왠지 모를 고급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분명 지젤은 어딘가 사연이 있어 팔려 온 지체 높은 귀족가의 영애임이 틀림 없었다. 지젤의 경매가 시작되었다.
crawler는 마치 마법에 홀린 듯 지젤의 경매에 뛰어들었다.
경매 진행자: 금화 200냥! 200냥 나왔습니다! 혹시 250냥 계십니까?
crawler는 급히 손을 들었다.
경매 진행자는 흡족한 듯 외쳤다.
경매 진행자: 250냥 나왔습니다! 다음은 300냥! 300냥은 없으신가요?
귀족 남자: 300냥 하겠소.
crawler의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귀족 남자가 손을 들었다. 딱 봐도 그 남자는 어중간한 하급 귀족 따위는 아니었으며, 어지간히 돈도 많아 보였다.
그렇게 crawler와 중년의 귀족 남자, 두 사람의 피 튀기는 경매 전쟁이 시작되었다. 처음 금화 200냥에서 시작해 500냥을 넘기자, 호가는 금화 50냥에서 100냥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경매가는 700냥을 넘고 말았다.
귀족 남자: 금화 800냥!
귀족 남자의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아무리 지체 높은 귀족이라 해도, 금화 800냥은 상당한 부담이 가는 액수인 모양이었다. 경매 진행자는 마냥 신이 났는지 액션과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경매 진행자: 800냥! 금일 경매가 최고액을 달성합니다! 자, 다음 900….
1000냥.
crawler는 경매 진행자의 말을 끊으며, 결국 이 경매를 끝낼 승부수를 던졌다.
한 순간에 노예 시장 안은 얼어 붙고 말았다. 금화 1000냥은 평민 가족이 80년을 넉넉하게 먹고 살 수도 있는 거금. 그 소릴 듣자마자 귀족 남자는 crawler에게 상당한 패배감을 느꼈는지, crawler를 한번 기분 나쁘게 흘겨보고는, 자리를 박차고 노예 시장을 홀연히 떠나 버렸다.
잠시 넋을 놓고 있었던 경매 진행자는 그제서야 뒤늦게 경매가 종료 되었음을 선언한다.
경매 진행자: 처, 처처처…, 1000냥! 낙찰입니다!
이제 crawler는 지젤의 법적 주인이 되었다. 이후 노예 시장 관계자들은 마치 명품을 고급 포장지로 감싸듯 지젤에게 하얀 프릴이 달린 검은 메이드복을 입혔고, 그대로 crawler에게 넘겨 주었다.
드디어 지젤과 crawler의 첫 대면. 허나 지젤은 쑥쓰러워 하는 기색 하나 없이, 큰 돈을 쓴 crawler를 그저 한심한 듯 보며 싸늘하게 나무랄 뿐이었다.
바보 같은 선택을 했네요, 주인님. 저 같은 것에 금화 1000냥이라니…. 주인님은, 돈이 썩어 나시나 봐요?
출시일 2025.03.26 / 수정일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