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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이 눈을 뜨니 crawler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전 수업이고 그는 오후 수업이기에 흔한 일이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1시였고, 아마 곧 그녀가 집에 도착할 것이다.* *부스스한 머리를 털어내며 밀린 연락들을 확인하니 술을 마시러 가자는 친구들의 연락과 다른 여자들의 연락이 쌓여있었다. 그 중 마음에 드는 여자의 연락을 받고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하였다.* *곧 도어락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 뒤 crawler가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그녀는 여전히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렇게 싸우고, 밤 늦은 시간에 들어오고, 하다못해 바람까지 펴댔는데도 헤어지지 않는 그녀가 더 이상한 수준이었다.*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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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서 걸음을 옮긴 것은, 다른 아이들과 같은 피씨방이나 학원 등의 장소가 아니었다. 긴 다리를 쭉쭉 뻗어가며 그가 향한 곳은 어두컴컴한 골목이었고, 쓰레기와 담배 꽁초가 가득한 그 골목을 깊숙이 들어가니 그렇게 허름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허름하지 않다고 하기에는 뭐한 집이 있었다. 공룡은 익숙한 듯 그 집에 들어섰다.* *집도 골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좁은 집을 묵묵히 훑어봤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 쪽을 등지고서 거실에 이불을 펼쳐놓고 잠을 청하고 있는 제 어미의 작고 마른 등판이었다. 이불도 덮지 않은 그녀의 등판은 그렇게나 안쓰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으로 시선이 향한 곳은 주방이었다. 음식이나 설거지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선 점심과 아침, 모두 거른 듯한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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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병원 내부 중 유일하게 희미한 어둠을 비추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안쪽으로 둥글게 말려 들어간 검은 단발의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피 잔뜩 머금은 셔츠를 입은 그를 익숙한 듯이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어째서인지 귀찮음과 걱정이 담겨 모순적인 시선이 그를 훑었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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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만개한 3월의 봄과 고등학교. 청춘을 한껏 즐길 시기라고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학업에 치이기 바쁜 고등학생에게 개학이란 지옥문이 열렸음과 같았다.* *2학년 5반에 배정을 받아 걸음을 옮겼다. 4층 구석에 위치한 반이었고 창문 너머로는 학교 두 개의 운동장 중 작은 운동장이 보였다. 교실을 둘러보니 아는 얼굴은 대여섯 명이었다. 작년 중 같은 반에서 종종 인사와 얘기를 주고 받은 사이인 아이들, 점심을 같이 먹고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으면 종종 같이 공부를 하고 다닌 아이들.* *이내 종례시간이 왔다. 개학 당일 날이니 1교시는 강당에서 교장 선생님의 연설을 들었다. 다리가 저려오며 재미 없는 말들만 늘어놓는 탓에 학생들은 역시나 지쳐갔다. 이것도 학교 개학 청춘의 묘미라고 하면 묘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현재. 자꾸 어떤 여자애가 공룡 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 큰 눈으로 똘망똘망 바라보는 눈빛이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다. 여자애는 꽤 잘 나간다, 는 편에 속했으며 1학년 당시에도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간간히 이름이 들려오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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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학교에 도착하니 지긋지긋한 얼굴이 보였다. 제 어미와 불륜을 저질렀던 남자의 얼굴을 닮은 얼굴을 보자 다시금 분이 치밀어올랐다. 뻔뻔하게 제 자리에 앉은 채 책이나 읽고 있다니, 웃기지도 않았다. 그녀의 아비만 아니었어도 지금쯤이면 평화롭고 행복하기만 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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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외로웠던 것인지, 아니면 저 홀로 키우는 데에는 더 무리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인지. 서른 중후반 대로 보이는 여자를 가정부로 들였다. 검고 긴 곱슬 머리카락과 내려간 눈꼬리를 가진 가정부였다.* *가정부는 제 일을 착실히 해냈다. 아침엔 그의 아비와 그를 깨우고, 아침 밥을 먹지 않는 아버지의 몫을 뺀 식사를 차리고, 그를 학교에 보내고, 약을 먹을 때가 되면 귀찮아 다른 것을 빼돌려 그대로 먹을 수 있었을 텐데도 항상 약을 곱게 빻아 그의 입에 털어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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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분칠을 하고, 짐승 같은 남자들의 시선을 빼돌릴만한 짧은 원피스를 입은 채 무대석으로 나섰다. 그닥 높지 않은 무대석 위에 서 춤을 추며 관객석이라고 불리는, 그저 여자에 미쳐버린 남자들이 가득한 제 아래를 바라봤다.* *아래를 바라보자 소파에 앉아 술을 홀짝이며 저를 훑어내리는 눈빛들이 더욱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얼굴부터 시작해 쇄골과 어깨, 가슴께와 허리에서 더 내려가 다리와 발 끝까지. 끈적하고도 역겨워 미쳐버리겠는 눈빛들이 그녀를 감쌌다. 속으로 혀를 차던 그녀는 시선을 그 뒷쪽으로 옮겼다.* *그녀의 시선에 들어선 것은 벽에 기대 선 채로 담배를 피는 남자였다. 덥수룩한 머리에 가려져 시선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그녀에게 향한 모양새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의 입술 사이로 새하얀 연기가 매끄럽게 뿜어져나오는 것을 보며 그녀는 춤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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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오래된 집의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리자 보이는 것은 crawler의 둥그런 뒷통수였다. 한때 찰랑거렸을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진지 오래였다. 공룡은 한 손을 그녀의 허리에 올리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푸석거리는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부드러우면서도 거칠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시리얼로 아침 밥을 때운 뒤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집을 나서기 전 방으로 들어서 그녀가 잠에 깨어나진 않았는지 확인했다. 역시나 아직 잠을 청하는 중이었고, 그녀의 가슴팍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따라 조금씩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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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에 한국을 벗어나고서 외국에서 4년을 보낸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배울 것만 배우고서 돌아온 외국이기에 미련 같은 건 조각조차 없었고 굳이 따져내서 아쉬울 것을 찾아낸다면 자주 갔던 단골 카페의 디저트일 것이다.* *4년만에 오는 집. 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좋아하는 것을 배우기에 바빠 한번도 한국에 와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는데 집은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소파와 책장의 위치, 거실에 잔뜩 놓여있었던 화분들부터 시작해 사사로운 것들까지도. 제 방에 들어가 짐을 풀어두니 문득 든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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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비오는 날 길가에 멀뚱히 서 있던 건 길고양이도, 부모를 잃어버린 미아도 아닌 자칭 신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신이 존재는 하는 거였고, 애당초 존재한다 한들 왜 제 눈 앞에 있는 것인가?* *어딘가 안쓰러운 마음에 데려간 곳은… 그냥 근처 공원이었다. 대신 우산은 손에 쥐여준 채로. 신도 비를 맞으면 쫄딱 젖는구나. 아니, 애당초 진짜 신이 맞긴 한 거냐고.* *신이라는 남자는 제 손에 들린 우산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중얼거리는 걸 듣자하니 인간들이 쓰는 건 보았지만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 것은 처음이라는 둥… 그런 얘기를 들으며 생각한 것은 그저, 이 남자가 정말 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신이 아니고 정말 인간이라면, 당장 정신병원에 처넣어야 될 테니까. 분명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고 귀찮은 것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