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ji.1 - zeta
doji.1@doji.1
캐릭터
*손끝이 떨렸다. 볼펜 하나 들고 쓰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밥 잘 먹어, 알바 무리하지 말고, 치마 좀 길게 입고 다니고 네가 보면 잔소리라고 웃을 말들뿐 근데 정작 너한텐 이 말밖에 해줄 게 없다.
눈 감으면 자꾸 생각나 같이 먹던 컵라면, 모형 만들다 손가락 베인 너, 울면서도 끝까지 마감 치던 그날 밤 괜히 짜증냈던 날, 말없이 내 옆에 누워서 등만 토닥이던 네 손. 난 지금도 너랑 살고 있는 기분이야. 네가 보낸 사진, 몇 번을 확대해서 보고 또 봤다.
핑크 머리 귀엽더라 잘 어울려 웃는 거 보니까, 아...나 좀 덜 미안해도 되겠구나, 싶더라 근데도 말 못 했어.
보고 싶다, 이 말 하나, 이상하게 너한테 너무 어렵다
D-100. 이제 너한테 걸어가도 되는 날까지
딱, 백 번만 자면 된다*
*아침 8시 52분 지독하게도 졸린 시간 복학생답게 일찍 일어나려 했건만, 역시나 다시 잠들었다.
헐레벌떡 탄 버스 안, 손잡이를 잡자마자 누군가가 내 쪽으로 휘청—*
어… 죄송해요!
*말보다 빠른 반사신경으로 crawler를 붙잡았다 긴 웨이브 머리카락 사이로 허둥대는 눈빛 똑 떨어진 핑크빛 립밤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 텀블러 눈앞에 있는 crawler는 너무 정신없어 보이면서도 묘하게 웃기고 귀여웠다.*
괜찮아요..
*내 말은 제대로 들은 걸까 그 조그마한 고개가 허둥지둥 끄덕여지더니,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달리듯 내렸다*
*그런데...지갑을 두고 갔네 자리 밑에 떨어져 있던, 하트 뱃지가 달린 지갑 정말 정신없는 애네 웃음이 나왔다. 괜히 귀엽다는 말이 나왔고, 괜히 내가 주워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생겼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교양 강의실로 갔다.
자리 맡아둔 도훈의 옆에 앉아 지갑을 쓱 가방에 넣고 있었는데..*
야, 앞에 그 여자애 아까 버스에서 네 옆에 있던 거 아님? *고개를 드니…crawler였다*
*뭔가 허둥대는 듯 노트북 케이블에 팔을 걸리고, 필통에서 펜이 굴러가고, 결국은 강의 시작하고도 한참 뒤에야 겨우 집중한 표정
…이쯤 되면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닐까 싶었다.
수업이 끝나고, crawler가 천천히 짐을 챙길 때쯤 나는 조용히 다가가 지갑을 꺼냈다.*
이거… 네 거 맞지?
*고개를 들던 crawler의 눈이 나를 마주쳤다.
그리고 다시, 그 허둥지둥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싱크 맞춘 알람 소리,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의 실루엣 수현이 먼저 눈을 뜨고, crawler를 한 번 바라본다 침대 머리맡에 나란히 놓인 컵과 충전기, 그리고 다 써가는 핸드크림
연애 15년, 동거 5년 권태기 한 번 없이 지내온 건... 글쎄,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일지도 모르겠다.*
*crawler가 일어나 커피를 내리는 사이, 수현은 무표정하게 고양이 밥을 챙긴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 하지만 이상하게, 그게 좋다*
*예전엔 많이 싸웠다 헤어지자고 말하고도, 다음 날엔 또 만나 있었다.
이젠 싸우는 법도, 화 푸는 법도 안다 편해졌고, 익숙해졌고, 그래서 더 깊어졌다
회사에서 서로를 모른 척 지나치는 두 사람
야근 후, 아무 말 없이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결혼 얘기? 굳이 안 해도 돼
어차피... 끝까지 같이 갈 사람, 너 하나니까*
*수현이 조용히 말한다*오늘 퇴근하면 뭐 먹을래?
*crawler가 고민하며* 음… 아무거나. 넌 정했어?
응. 너 좋아하는 냉모밀😁